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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장군
명량, 이순신 장군

명량 이순신의 해전은 세계의 교과서

대한민국 영화 관객수 역대 1위 명량은 박스오피스 17,615,053명이다. 러닝타임 128분. 김한민 감독 작품으로 이순신 시리즈를 3부작으로 기획하였고 첫 번째가 명량, 두 번째가 한산, 세 번째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노량이다. 얼마 전 김한민 감독의 두 번째 한산이 개봉하였기에 첫 번째 시리즈인 명량을 되짚어 본다. 한산이 명량의 관객수를 앞지를지는 미지수이지만 분명 그에 못지않은 관객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봉한 지 8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 관객수 기록이 여전히 깨지질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한국 역사 최대의 위인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과의 여러 해전에서 모두 승리하고 거북선도 제조한 구국의 영웅이지만 왕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당파적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 큰 시련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의종군하여 자신을 버린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인물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해전사에서 반드시 회자되고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전 세계 해전 전술의 교과서이다.

 

명량 해외 상영 수입 

총 미국 및 캐나다 $2,589,811

전 세계 총 $138,342,258

 

명량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가장 존경받는 전략가인 이순신 장군의 한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군사적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진왜란이 있은 지 6년 후인 1597년, 조선은 긴 전쟁으로 혼란에 빠졌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해임되기도 했던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선임되어 나라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2척의 배와 1척의 거북선만 가지고 있었다. 부하 장수들은 두려움 때문에 싸우기를 거부했고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진 지 오래였다. 임준명은 이순신에게 임무를 받고 간첩 준사의 비밀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군 기지로 간다. 조선인 포로들이 죽을 위기에 처해지자 기지를 발휘에 위험을 넘기지만 포로가 된다. 배수봉은 임준영 대신 비밀편지를 들고 이순신에게 찾아온다. 수봉의 아버지는 이순신과 같이 해온 부하였으나 세상을 떠났다. 수봉은 이순신에게 배에 올라 함께 싸워달라고 부탁한다. 전장에서 전우를 모두 잃은 병사가 탈영하다 붙잡히고, 이순신은 무질서한 규율을 바로잡기 위해 목을 베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한다. 도망칠 생각만 하던 병사들이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도록 진영을 불태우며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고자 한다면 죽는다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의 가장 유명한 어록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군의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나라가 망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정말 이순신 장군답게 잘 표현하였다.

 

명량 이순신의 부하장수 나대용과 안위

극 초반 권율 장군에 원군을 요청하는 장수역으로 출연한다. 1556년 전남 나주 출생인 나대용은 1583년 무과에 급제, 1591년 이순신 장군 휘하로 들어가 부장을 지내고 거북선 개발에 공을 세웠으며 옥포, 사천. 한산도, 명량, 노량해전에 참가하였다. 1611년 교동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천 해전 시 입은 부상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사망하였다. 장보고급 잠수함 1척에 전함 이름으로 사용 중이다. 나주시에 사당이 배향되어 있다. 거제도 현령 안위는 영화에서는 아주 유능한 장수로 묘사된다. 도망치는 경상 우수사 배설을 멀리서 활을 쏘아 사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영화상 설정이다. 1563년생으로 전북 김제 출신이다.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정여립 5촌 조카라는 이유로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유배지를 이탈 무과에 급제하여 군인으로 발탁되어 1594년 거제현령에 제수되었다. 노량 해전에 공을 세우고 1598년에 전라 우수사로 제수되었다. 82세까지 살아 장수하였다. 경상 우수사 배설 1551년 경북 구미 태생. 부친이 한성 부윤을 지낸 배덕문이다. 임진왜란 때 합천군수였고 의병장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된 감면의 명을 거부 곤장 20대를 맞기도 했고 원균의 후임으로 1597년 경상 우수사에 임명, 칠천량 전투 때 판옥선 12척으로 남해 쪽으로 후퇴하였다. 이 12척이 나중 명량해전의 주요 전력이 된다. 난중일기에는 그의 행적이 10차례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도망쳤다고 적혀 있다. 영화 내용과 달리 1599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 내려져 온다. 배설 장군의 후손들은 사자 명예훼손으로 감독과 제작사를 고소한 바 있다.

 

명량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현재의 한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중에 한 사람이다. 성웅이라고 그리고 불멸이라고 불리는 이순신 장군의 45전 해상 전투에서 한산대첩에 버금가는 명량 해전을 그린 영화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도 있다 했지만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절망에서 그리고 절대적 불리함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그 교훈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0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장군을 1만 원 지폐로, 세종대왕을 5만 원 지폐에 넣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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